시가지를 달리는 소년, 2009 by 데스땡

뛴다. 헉헉댈 틈도 없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여 잠시 폐와 기관지의 움직임이 하늘에 던진 공마저 드디어 정점에 닿을 때처럼 멈출 때, 그 찰나의 짬에도 숨을 몰아쉴 수가 없다. 근육의 예정된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것들은 네로황제처럼 무시한다. 내 관심사는 로마가 활활 타오르는 것같은 뜨거운 무언가니까.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은 왜 정상적인 속도로 걸어가서 나에게 걸그치는 겅미? 쫌 이럴 땐 내 동선에 맞춰 삭삭 피해주며 착한 일좀 해도 되는 거잖아? 난 좀 절박하고 다급하다고! 사실은 그런 생각을 할 짬도 없다. 말했듯이 내 모든 뉴런은 달리기를 위해서만 최적화되어있으니까. 귓속엔 트레인스포팅의 배경음악이 울리는 듯하고, 하우스오브데드같은 1인칭 시점 게임에서처럼 크리쳐들이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동물적인 감각으로(그래봤자 플라나리아 수준이지만?) 장애물들을 왼쪽오른쪽으로 휙휙 보낸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어.



저- 앞. 크라운뷁커리 사거리에 신호등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주 잠깐 도덕심이 튀어오를 것같았으나 이내 곧 무시했다. 그래 훌쩍. 검고 흰 횡단보도 페인트를 허들처럼 하나쯤 뛰어넘었더니 파란 불이 띵- 하고 들어온다. 하늘도 도우시네? 이 연애는 역시 정도령도 점지한 거야. 라는 식의 결정론적인 망상도 서슴지 않는다. 신호를 기다리며 적체된 한무리 군중들의 숫자와 크기, 성향등을 재빨리 파악하고 내 동선을 짜려는데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난다. 짧은 내 질주극은 끝났다. 부조리한 시대가 끝나갈 때 쏟아지는 민중들의 아우성처럼 비로소 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심장이 두근댐을 인식한다. 빨라진 심박동이 뛰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리운 사람을 만나서 그런건지, 구분할 필요따위 없다고 생각했고, 이게 산소가 필요해서 숨이 가쁜건지, 아니면 어엿비 여기는 사람을 만나 하악하악 침을 질질 흘리며 분비물 낭비하는건지 구분할........ (아 끝이 왜 이러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장면
소년과 소녀는 이렇게 고요한 데이트를 했습니다?



연대앞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그가 있는 신촌역까지 달렸다. 길의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 전화로 물어보면서도 달렸다. 길 중간쯤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구 뛰기 시작했는데, 이때를 위해서 그동안 운동을 했나보다. 유산소따위는 어떻게 하나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던 어린 시절엔 창천교회까지 가기도 전에 헉헉대며 쉬었을텐데, 한번 쉬지도 않고 뛰었다. 하긴, 얼마전에도 신촌역에서 기다리는 Q님을 향해 연대앞에서 신촌전철역까지 뛴 적도 있구나. 왠지 후다닥 챙겨서 나간 것이니만큼 한순간이라도 얼른 만나고 싶어서 뛰었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지금 2009년에야 만나게 된 우리는. 최대한 기다리지 않고 얼른 만날 수는 있어도, 서로를 기다리지도 않던 예전으로 돌아가서 만날 수는 없다.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말이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대륙에도 원주민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서로는 엄밀히 말해 신대륙이 아님을 알고 있을만큼 열정적으로 올바른(PC, passionately correct) 성인커플이긴 하지만 말이다, 종종 질투심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 누굴만났고, 뭐 이런게 아닌, <시간에 대한 질투>라는 개념인데, 그아이가 나를 알기 전의 그 많은 시간에 (당연히) 나와 함께 즐겁지 않았을 그 시간에 대해 아쉬워하고, 그래서 아, 그때 난 너와 함께할 수 없었을까? 따위의 허세판타지스러운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다. 오호 통재라. 그래서, 비록 애니메이션의 <소녀>처럼 시간을 달릴 수는 없어서, 난 그냥 시가지를 달린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도 일분일초가 아깝다.




신변잡기만담뒷담화개그 포스팅을 기대하셨던 이웃분들의 반응 예상

1. 온 몸이 오그라졌다?


2. 이 색히 뭐라는 거야? (공감안됨)

3. 기타

골라보시겠읍니까?

덧글

  • 가하 2009/02/02 16:57 # 답글

    저는 싸가지를 달리는 소년으로 읽었어요. 그 이후는 노코멘트.
    뭐야. 오늘 편의점 가니까 쵸코렛을 쌓아놓고 팔던데. 뭐야.
  • 데스땡 2009/02/02 17:01 #

    히말라야의 저산소 역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군요? -_-; 근데, 그 제목도 저와 영 관련없지는 않네요. 그래서 더 이상 반박을 할 수는 없겠고... 쪼꼬렛같은 것에 소비하지 않기로 합의를 봤으니 염려 놓으셔요.
  • 페리 2009/02/02 17:14 # 답글

    전 기타...(....._
    뭐랄까, 오그라들게 부럽군요;
  • 데스땡 2009/02/02 21:01 #

    전 이모티콘의 오묘한 세계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쓰는 이모티콘이 딱 세개밖에 없어서 그런지 다른 이의 그것도 파악을 잘 못하는 편인데, 페리님의 '기타' 뒤의 쩜쩜쩜 외 기호둘 이 뭘까 고민해봤지만 그닥 뾰족한 수가 없군요~
  • 페리 2009/02/02 21:02 #

    아; 그거 그냥 (...)인데 오타가 나서;;;
  • 데스땡 2009/02/02 21:12 #

    아하~ 그러고보니 두 키가 붙어있네요~~ :)
  • sinyoung 2009/02/02 17:59 # 답글

    좋~~~~~~~~~~~~을 때다! 흥!

    (솔직한 반응이었습니다. 죄송 ㅎㅎ)
  • 데스땡 2009/02/02 21:04 #

    하하하하, 따블유 호텔에 가서 전지훈련도 하고 오신 신영님이 이런 반응이시면 솔로 레지스탕스들은 어떡합니까요. 좋~~~~~ 을때가 오래가길 빌고 있습니다. 노력하려구요~~
  • 베리배드씽 2009/02/02 19:29 # 답글

    음음, 알파카 귀엽네요. 오늘 저녁은 무얼 먹어야 잘 먹었다고 자랑질을 해댈 수 있을까요? 데스땡님 추천해 주세요(딴짓-_-)
  • 데스땡 2009/02/02 21:06 #

    어머, 베배님답지 않게 글의 내용과 완전히 빗나간 덧글은 어인일인가요? 하하.. 그리고 알파카인걸 단박에 알아보셔서 놀랐어요. 전 저 동물이 뭔지 잘 몰랐거든요. 전 저녁으로 마켓O브라우니와 유기농제품으로 이뤄진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었어요. 소문도 내려구요~~ 결국 뭐 먹었어요?
  • 베리배드씽 2009/02/02 22:05 #

    미제 소세지 들어간 김치찌개요. 어머님이 의정부 분이시라서 어릴 적 먹던 미군 부대 소세지 맛을 잊지 못하실 때 가끔 하는 음식. 김치가 많이 들어가서 부대찌개라 하긴 좀 그렇지만 맛있어요 ㅋㅋ 데스땡님은 자랑할만한 유기농 식단인데 전 그냥 어머니가 차려주신 가정식 백반 먹었다는 이야기..빗나간 덧글은, 한 번 외면해보고 싶었어요 (부럽지않다 ㅜㅜ)
  • 데스땡 2009/02/02 22:37 #

    부대찌개엔 역시 고급스러운 햄이 아니어야 제맛이죠. 부대찌개에 스팸이나 독일식 수제소시지가 들어가면 이미 그건 부대찌개가 아니죠.. 저 부대찌개 엄청 좋아해요. 게다가 의정부 손맛을 가지고 계신 엄마표 가정식 백반이라니, 부러워요. 아직 논문 읽어보진 않았는데, 혹시 이 덧글처럼 핵심에 빗겨나간 내용으로 가득찬 내용받침은 아니겠죠?? 하하. 이제 논문도 끝났으니 얼른 한놈 낚으셔요!! 달홍, 별소녀님과 이글루스 삼녀 미팅 고고.
  • 2009/02/02 19: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2/02 21:11 #

    '멋지셉니다'는 뭡니까- 음, 갈수록 공통점이 늘어나고 있군요. 하하하.
    근데, 비공개님 회의론자에 가깝군요. 그거 상대를 무지 힘들게 하는 거니까, 영원히 믿으라고는 안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그분에게 한번 눈 질끔 감고 속아주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음, 저도 한때는 회의론자, 비관론자, 냉소주의자였는데 반짝하는 황홀한 순간 이후에 좀 변했어요. '믿는'건지 아니면 '믿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 믿어서 제가 얻을 이득은 별로 없더라구요. 잃을 손해가 좀 줄어들 수는 있어도... 근데 안 잃으려면 뭐하러 연애하나..싶어서 그거 버려버렸어요. 아, 그리고 또 중요한 점이 있는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상대방이 얼마나 열어주냐에 따라 또 달라지더라구요. 뭐 다 아는 얘기지만 왠지 경험이 덧씌워지면 좀 더 그럴듯하잖아요~~
    이제, 정식으로 항의하는데, 인제야 제가 멋진걸 아셨다니... 원래 멋졌다는걸 '믿어'주시길 바래요~~
  • 타누키 2009/02/02 20:26 # 답글

    1번 당첨요. ㅎㅎ
  • 데스땡 2009/02/02 21:11 #

    음, 역시 1번이 대세인 것 같아요. 음..
  • 하루 2009/02/03 23:46 # 삭제 답글

    훗. 저는 절대 안뜁니다. 늦어도 우아하게 (...)
    (이색히 뭐라는 거야. 데스땡님의 반응은 2번이겠군요 ㅋㅋ)
  • 데스땡 2009/02/04 12:08 #

    하루/ 뼈대있는 양반가문이시거나, 아니면 甲의 위치시거나? 그것도 아니면 좋을 땐 지났거나? 후훗
  • 하루 2009/02/04 18:46 # 삭제 답글

    뛰어오는게 멋있는 건 뛰어올 때 뿐이에요 ㅋㅋ 그 뒤를 생각하면 화장실에 들러 향수 한번 뿌리고 가는게 낫다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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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