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없어질 시간한정 포스팅. by 데스땡

사람사람마다 참 다르다는 명제는 재론의 여지따위 없이 당연한 것이긴 했더라만은, 그렇다고 지금 그 다름때문에 벌어지는 내 괴로움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내 마음이 그리 당연스럽지 않다. 속이 미식미식거리고 머리속에서 휭휭 바람이 부는 것같은 지경이다. 나의 노력과 상대방의 노력이 같은 것이 아니고, 아니아니 그보다 심한건, 나의 치료제가 상대방에겐 독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버리고는 불안증환자라도 된 양, 참하게 앉아 있지도 못하겠다. 무언가 휘적휘적대고 있는 '우리'는 지금 안타깝게도 한 우리안에 있는 즘생들이 아니다. 묘하게 타이밍도 어긋나고 있는 중이고, 대화는 종종 가시를 주고 받고 있다. 나름 잘해보려고 내 성질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상대방도 잠시 노력을 했던 순간이 있었겠지? 서로 번갈아가며 끌어올렸던, 그러나 빗나갔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노력을 왜 몰라주냐며 원망스러워하고, 난 <그래도> 열심히 했어. 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 그 또한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직도 내 모니터 옆에 붙어있는 사진의 그이는 방긋웃고 있는데, <인류보완계획>위원회 같은 비밀조직 구성원들의 목소리처럼 표정은 보이지 않고 전화기 상의 목소리는 싸디싸늘하다.


괜찮아. 다 잘될꺼야. 라고만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줘.

머리를 후드려맞은 것 같았다. 내가 저런 말을 안하는 사람이었던가. 오히려 앞으로의 일 걱정은 잘 안하는 사람이지 않았나. 정말 어리벙벙한 느낌에 휘청휘청했다. 그러다가 아차. 사람은 왜 지난 일을 딛고 현재에 서있는 걸까. 작년에 만났던 사람은 현재에 안주하기엔 미래가 흐릿하다고 생각해서 종종 불안해하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일을 벗어던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할정도로 안주하기 딱 좋은 '평균이상의 괜찮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의 몇년후가 보이지 않았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가진 정보들이 아주 도움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대체로 나와 분야도 다르고, 결국 그 자리를 박차려면 스스로 큰 마음을 먹어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은 응원과 격려, 지지같은 것밖에 없었으므로 '잘 될꺼야. 너는 ~~~하니까.' 같은 말을 해줬다. (잠시 추가하자면, 그사람은 너무 좋은 말만 한다고, 그닥 의미없어 보이는 말들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랬었다.) 그래, 그때의 학습효과가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구나. 예전 기억을 못잊고 어쩌고 하는 걱정은 없다.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였고, 나에게 지금 사람 이상의 다른 누군가는 혹시 없지 않을까 하는 식의 절대적인 믿음조차 있었으니까. 단지, 과거에 불에 손을 데면 뜨거웠다.와 비슷한 부류의 학습효과로 상대방과 공명하지 않은 격려는 아, 필요가 없는거구나. 라고 단과학원에서 배운 단편적인 학습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렷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난 물어봐도 되는 위치인줄알았다.) 대답해주지 않고 걱정만 하면 왜 나에게 상의해주지 않는지 서운해하고, 난 모르기때문에 '괜찮아. 힘내. 잘될거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테크트리를 탔던 거지. 상대방은 자꾸 물어보면 그 일들이 다시 떠올라 괴롭고,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토닥토닥 따뜻하게 포용해주기를 바랬을텐데 그렇지 않으니 또 어긋나고.


<더레슬러>를 봤고, <박쥐>를 봤고, <30 days of nights>, <300>같은 영화를 봤다. 날 것들이었다. 영화들은 대체로 내 취향들이어서 화면들이나 설정이 조금은 날이 서있다고는 해도 감성적인 쾌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입맛이 싸늘.. 봤던 영화들이지만, <6년째연애중>이나 <이별후애-브레이크업>을 보니 막힌 관상동맥에 유한락스 붓는 것같이 어지러웠다. 순간 모니터 앞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옮겨온 것처럼 23.5도 기울었는데 난 과학성적이 좋았으므로 이건 가짜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시야가 휘청휘청거렸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열심히 연애할때 쉬었던 시간에 함께 먹었던 것들때문에 체력은 저질이 되었고 몸무게는 4kg나 늘었다. 그냥 멍하게 한시간 20분이나 트레드밀 위에 있었더니, 무리하면 아프곤 하는 왼쪽무릎이 시큰거렸다. 덕분에 3일은 운동을 쉬고. -_-;


말로 꺼내게 되면 오지랖넓은 요정들이 현실로 이뤄줄까 두려워 혼자있는 집에서도 아무말 못하고 있다. 단지 처음부터 인화성 물질처럼 불타올랐던 사이라 한번쯤 천천히 돌이켜보라는 의미로 이런 일이벌어지긴 개뿔.. 아 답답하다보니 평소에 하지도 않는, 사건의 의미부여까지 하고 앉았네. -_-; 좀 돌려서 다시 해석하자면.. 서로의 상황대처법을 알아본 계기가 되어 더 나은 배려스킬을 득템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직소요철에 맞춰서 나를 깎아가는 뭐 그런것.  이렇게 너무 당연한 소리를 쓰고 앉았는게 흠좀무스럽긴 하지만, 나 혼자 포자번식을 해서 자기분열적 연애를 하지 않을거라면 오케이, 오늘도 부딪혀보고 수그려보아야겠다?


근황한줄요약.) 연애로 고민중입니다.



덧글

  • 2009/05/05 12: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00 #

    아니어요.. 섬세하다기보단 그냥 올곧아요. 의존적이 되지 않으려고 힘쓰는 편이에요. 전 좀 저한테 투덜거려줬으면 좋겠는데 하드타임을 보내는 방식의 차이가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다니. 깜놀깜놀.
  • 2009/05/05 13: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02 #

    아아, 말로 푸는 사람에겐 이유를 듣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고문을 할 수 있을 것같아요. <뭘 잘못했는지 니가 알텐데.>라는 건 정말 반인륜적인 고문이군요!
  • 2009/05/05 13: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08 #

    아 너무너무 고마워요. 그 전에 정말정말 오랜만!! 좀 씨리어스한 포스팅을 하니 숨어있던 이웃분들에 퐁퐁 튀어나오시눈군요. 으흐흐흐.
    정말 모니터에 밑줄치면서 잘 읽었어요.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흠, LCD모니터에 그어진 유성매직펜 자국은 어쩔꺼에요!! 네네, 저도 다 잘될거라고 생각하고 또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
  • 2009/05/05 15: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11 #

    끝까지 노력하는게 도대체 뭘까요ㅠㅜ 차라리 '여기까지'했으면 할만큼 한거다. 라는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높은 산처럼말이에요. 모두가 내 속같지 않으니 남속은 정말 모르겠고, 아아 정말 어려워요~~ 근데, 저도 그닥 침착하진 않고 좀 버럭버럭 하는 성격인데, 나름 많이 노력하고 있답니다. 아아, 이 시커멓게 변해가는 속을 알아줄까요.
  • 2009/05/05 16: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14 #

    큿큿, 공짜로 편집장에게 상담받은 느낌이에요! 아우, 저는 무슨 일인지 들으면 '난 너의 노예야. 분부만 내려주십쇼. As you wish. It shall be done. your highness.'이런거 할 준비는 진작 되어있었는데, 그게 문제였어요. 모두가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지지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지나서 비공개님의 덧글을 봤는데, 네네, 비슷한 멘트를 치긴했는데 그게 먹힐지는 좀 더 봐야죠~~ 하하.
  • 2009/05/05 20: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18 #

    다들 너무 감사해서 폭파못시키겠어요~~ 마음에 땅거미 질때마다 다시 살짝살짝 보곤 하려구요. 그나저나, 역시 그쪽으론 빠른 눈치? 하하.
    페이소스와 유머가 뒤범벅된 하소연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는데, 음, 그냥 그건 저만 써먹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방식을 이제부터 빡시게 배워야겠어요. 고마워요-
  • 2009/05/05 23: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21 #

    아니, 저와 저의 연애에 대해 얼마나 큰 환상을 가지고 있던 거에요! 완벽한 사랑이라니. -_-; 저도 찌질하고 쪼잔하고 버럭하고 토라지는 그냥 평범한 블로거라구요!!
    그나저나 그 찌진남은... 음... 지못미 ㅇ님
  • 2009/05/06 00: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22 #

    와우 서프라이즈!!
    오랜만에 들어오셨다가 제 글이 얻어걸린거, 흠 상콤치 못한 내용이라 좀 미안하려고 그러는데, 그 ㄷㄷㄷ에서라.. 참 듣기 좋군요? '그곳'이 생기면 꼭 알려주셔야해요. 꼭꼭꼭.
  • 2009/05/06 00: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23 #

    고민보단, 어차피 현실의 얘기니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맞춰야하나에 집중하려구요.
  • 2009/05/06 01: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26 #

    아유 알아서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어려운 문제에요;;; 자습서 팔았으면 좋겠다구요.
  • 택씨 2009/05/06 11:18 # 답글

    비온 뒤의 굳은 땅이 되시길 바래요.
  • 데스땡 2009/05/07 00:26 #

    아유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 하얀머리 2009/05/06 14:1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27 #

    이 덧글 왜 안나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짝궁S 2009/05/06 16:34 # 삭제 답글

    요즘도 젊은이는 내가 무슨 열받는 얘기라도 할라치면 무조건 괜찮아~ 잘될꺼야~ 내가 이해해줄께~ 이딴말만 늘어놓음.. 난 정말 이말들에 화가 더 치밀어 오름. 뭔 내 말을 듣고 나서 하는 말인지.. 저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이잖아?
    근데 너 글을 보고 나니 젊은이가 고민있을때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지가 했던 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드네 쩝
  • 데스땡 2009/05/07 00:30 #

    어휴, 그니까. 나도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면 어떤 얘기도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나봐. 소양인은 일단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한대. 사람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기가 바라는 방법을 택해게 되나봐. 그러다가 상대방이 원하는게 다르다는걸 느낄때 '아차'하는거지. 근데 또 다 안다고 다 할 수 있는건 또 아니에요. 음양화평지인은 연애도 잘할까?
  • 2009/05/06 20: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07 00:30 #

    고맙습니다~
  • 2009/05/10 02: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5/11 15:25 #

    단순히 학습용 외국어가 아니라, 생활외국어더라구요- 문법보다는 뉘앙스가 더 중요하고, 완전한 문장을 구성하기보단 얼른 뜻을 전해야하고 말이죠. 조언 고마워요~~ 그리고 오랜만이라 더 더 반갑습니다. :)
  • 오오 2009/05/13 12:31 # 답글

    연애란 원래 힘들어요. 결정이 나고 나면 그때부터 핑크빛인거죠. 그러기전까지는 저울위에서 항상 위태롭기마련이지 않을까싶어요. 그렇다고해서 결정 후의 핑크빛은 오래갈까? 그것 역시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거죠. 곧 불어닥칠 후폭풍 암흑의 시대(?)를 눈치빠른 부류의 사람들은 미리 감지하게 되어 곤혹스럽게 되기도 하거든요.
    데스땡님. 그냥 원하는 대로 하세요~ 가오는 무슨 가오!!! 배려는 무슨 배려!! 다 필요없어요 ㅎㅎㅎㅎ ^^ 원래 연애는 쪼잔하고 찌질하고 유치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딸깍하며 맞춰지는게 있지 않을까요? 이미 다 해결 보셨을래나? ^^;;;
  • 데스땡 2009/05/13 21:49 #

    굳이 고상하려고 노력 안해도 저절로 찌질한 상황이 되던걸요- 이번엔 밝기만 할꺼라는 희망이자 예상은 곧 또 한번의 착각 혹은 기만이 되어버리죠. 그래도 어쨌거나 잘해보고 싶고 현명한 방법을 찾고 싶은데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댓글 입력 영역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