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5일
공부한다고 노트를 뒤적이다가

원래 오늘은 대전을 출발해서 며칠 서울에서 stop over했다가 출국할 계획이었건만 아직까지도 대전이다. 대전에서 처리해야할 일이 하나하나 꼬리를 내 팔에 얹고 있고, 책을 뒤지다보면 한두시간은 훌쭉이고, 그러다보면 퇴근시간이 겹친다고 차끌고 못올라가게 된다. 그러면 또 밤이니까 쉬어야지. 그래서 오늘도 하루를 넘긴다. 내일 아침엔 꼭 가야하는데, 요새 약간의 불면증때문에 기상시간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 오늘도 텔레마케팅 전화때문에 일어났네.
이번 여행의 주 아이템은 세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겠는데,
1. 미술관 - 아아, 비엔나 미술관에 있는 리스트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
2. 건축 - 왕궁같은 모뉴먼트는 물론이요 그냥 그 동네 사람들의 주택가를 돌아다니고 싶다.
3. 동네 시장
정도인데, 3번은 그야말로 가서 봐야하는거고 1번 2번은 준비하고 공부할 수 있는 거다. 도서관 가서 책을 조금 빌려봤지만 건축의 메이져는 이탈리아, 프랑스, 런던쪽이고 미술도 뭐 마찬가지고. 중부유럽엔 프라하의 Frank Gehty나 빈의 한스홀라인 아돌프로스 정도 말곤 현대건축도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중심부는 아닌거다. 그러다보니 관련 서적도 별로 없고 D대학교 도서관은 더더더욱 책이 없다. 할 수 없지.. 싶어서 예전에 배웠던 미술사나 건축사 책을 뒤져보니 어라! 여기엔 그나마 좀 있다? 각론은 아니지만 그리스 고전주의 - 로마 고전주의 - 기독교 - 비잔틴- 로마네스크 - 고딕 고전주의 - 르네상스 - 바로크 - (로코코) - 18세기로 이어지는 건축 사조에 대한 설명들을 열심히 필기해 놓은 노트도 발견했다. 그때 쓰던 교과서엔 특별히 18세기 계몽주의와 관련하여 설명도 나온데다가 특히 오스트리아의 분리파 '제체시온'에 대한 챕터도 있구나!
비엔나의 에곤실레와 클립트는 그림책을 빌려놨지만 다른 중부유럽 회화에 대한 내용도 막막했다가 오예 미술사 수업 필기 노트도 발견했다. 3시간 연강동안 끊임없이 슬라이드를 넘겨가며 그림을 힐끗힐끗 보는 것과 동시에 미친듯이 필기를 해야했던 그 과목. 건축과 학부시절동안 제일 열심히 '외웠던' 과목이었더랬다. 미술사 박물관의 컬렉션을 대충 훑어보니 대충만 봐도 루벤스가 있어? 벨라스케스도? 렘브란트도 있고 뒤러도 있단말야? 오 나 브뢰겔 배웠어!!!
아까부터 미술사책과 건축사책, 그리고 각각의 필기노트를 끼고 앉아있다.
8년은 되었을 이 노트를 왜 아직도 가지고 있냐면, 내가 제대로 필기를 했던 유이唯二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도 올려놨지만 현대건축시간엔 평소같지 않게 다른 색 필기도구도 써가며 그림도 꼼꼼히 그려가며 적었다.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다. 시험 전날 보니깐 과 전체에 내 필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던 복학생들도 내 필기를 가져와서 이게 무슨 얘기냐고 물어봤다. 미술사 필기도 나 다음에 들었던 친구 두세명이 물려가며 시험공부를 했었더랬다. 다시 돌려받긴 했지만.
우연히 건축전공을 선택해서, 우연한 만남치곤 꽤나 괜찮은 공부를 했지만, 3학년을 지나면서 난 디자인 공부보다는 이론이나 역사공부가 더 재미있다는 걸 깨달았다. 건축사나 미술사 수업은 깨달음의 계기이자 새로운 동기부여 그 자체였다. 빌어먹을 저질체력덕분에 며칠씩 밤 새워가며 마감을 하는 생활을 못따라갔고, 그렇다고 미리미리 해놓는 성격은 아니어서, 과제 마감날짜를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난 이론공부와 조우한것. 오더가 어떻게 배치되어있고 평면이 어떤 경향을 갖느냐에 따라 건축을 해석하고 시대를 반영하고, 때론 시대를 이끌어가는 역사-이론의 복합체가 너무 재밌었다. 막연히 난 디자인 말고 공부를 해야지. 라고 생각을 했고 조금 알아보다보니 대학원 이론 공부에도 스튜디오 수업이 필수였고, 또 3학년 넘어서 또 건강상 크리티컬이 터지는 바람에 건축 공부에 대한 마음을 살포시, 하지만 다시 펴지지 않을 정도로 접어 놓았다.
고전 유럽이나 현대 유럽의 중심으로 여행가지 않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가슴을 쓸어내린다. 시험 끝난지 일주일만에 대충 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때문에. 이번에 가는 중부유럽이야 직접 수업시간에 배우지도 않았고 약간은 곁다리인터라 막상 마주쳤을 때의 아쉬움이 없겠지만 빠리 시내에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보고 내가 감동과 해석을 뒤섞어 놓지 못하면 참 맥이 빠질 것 같다. 교외 어딘가에 있는 꼬르뷔지에의 주택이나 롱샹성당을 못보고 오면 땅을 칠 것만 같다. 중부유럽에도 어딘가에 멋진 건축이 있기는 하겠지만, 뭐 내가 안배웠으니 죄책감이 덜하잖아. (그런 의미에서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멜크 수도원쯤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 늦게서야 두꺼운 미술사 책을 펴는게 과연 내일 상경에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되고 말것인가 불확실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7~8년전의 기억을 떠올려가며, 의무감 0%의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근거린다.
# by | 2009/06/25 00:56 | 중구라파, 2009 | 트랙백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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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써놓고 보니...;; 죄송합니다 =ㅁ=;
저는 필기해놓은거 보면 해독 불가랍니다; 직접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저건 아주 양호한 수준. 아니 제 노트중 제일 깔끔한 거라서 그렇답니다. 전 해독불가일 것도없는게, 제대로 필기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안해버려서요. 그래서 볼펜이나 색연필을 아주 오래쓰죠.
나도 이제 정말 발등에 불 떨어져서 여행준비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 아예 태어나서 한번도 가지 못한 대륙에 발을 디디려니
감이 안와서 죽갔어 ㅋ 난 이번 기회에 멕시코도 살짝 밟아볼까 생각중!!
미쿡은 대충 해가도 되지 않나? 게다가 그 쪽에 현지 요원도 있다며. 진짜 구라파는 팔수록 가고 싶은 곳이 늘어나서 나 이정도에서 그만해야할까봐. 교통편이나 좀 더 알아봐야지. 근데 멕시코도 간다고!! 왠지 멕시코는 미국에서 한탕 한다음에 돈보따리 짊어지고 가는 이미진데.
전 중학교때부터 왠만하면 워드를 이용했던. -_-; 한글1.53 안써봤으면 말을마세요. ㅋ 오죽했으면 펜글씨를 배웠겠어요. 물론 성질에 안맞아서 때려치고 나왔지만 말이죠. 그리고 글씨 쓰는 속도까지 너무 느려서 필기는 언제나 개나줘버려.
여행가는데 항상 공부를 해야지 마음먹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서 막상 가면 모든것이 새롭고 즐거웠지만, 몇가지는 몰라서 아쉽고 속상했던 것들도 있었어요. 근데 아무리 해도 예습은 안되는 성격이라. 네네. 그래서 공부를 못했어요. ;;
아.. 이런 염장포스팅은.. 에어콘 밑에서 냉방병으로 쓰러져가는 어린처녀에게 심히 해롭습니다.
상투님 중학교때부터 워드 쓸일이 있었어요? 아니면 ITgirl이었을 수도 있겠군요. 한글때문에 글씨가 퇴화한 거에요. 이찬진씨에게 얼른 손해배상 청구하세요.
상투님 개는 항상 배불리 먹고 살수 있겠군요. 개나줘버릴게 하도 많아서-_-;
클림트랑 벨라스케스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클림트가 늘 그랬대요. 이 세상에 화가는 나와 벨라스케스 둘뿐이다 라고.. 비엔나에 가면 벨라스케스 그림도 보실 수 있을 꺼예요. 제가 원래도 수녀원, 수도원 방문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번에 하코다테에서도..) 저도 멜크 수도원은 그중에서도 꼭 가보고 싶어요. 아무튼! 하이고 부러워랑~ 저는 포스팅 보면서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하는게 여행을 가고 싶은가..보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저런 0프로의 의무감을 가진 공부를 하고 싶은 건가봐요. 막 공부하고 싶네요 :)
클림트의 자체 라이벌이었단 말이죠!! 벨라스케스 그림중엔 그 유명한 어린 왕족 소녀를 그린 그림이 제일 좋아요. 전경말고 배경을 살살 살펴보면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말이죠. 한국에서 루벤스전같은 특별전시회 하면 잘 못갔었는데 이번에 한껏 보고 올것같아서 콩닥콩닥.
멜크수도원은 원래 그냥 지나가야지. 하다가 공부하면서 괜히 맘이 동했어요. 나름 장미의이름 빠돌인데 성지순례해야지. 하는 맘이 들었지 뭐에요. 멜크에서 내리면 짤츠가는길이 많이 귀찮아지는데 그래도 가봐야겠어요. 하코다테에 그 수녀원 가셨구나.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했던가요.. 날이 맑았으면 자전거빌려서 가보려 했는데 비가 오는바람에 포기했어요. 막상 다가오니까 좀 더 공부하면 좋았을껄..하는 맘이 더 커져요. 출발 전날 밤은 시험때보다 더 열심히 밤새워 공부할지도? 2%정도의 의무감으로.
네, 저 건축전공했어요- 그래서 예전에 택씨님 포스팅에서 안전률이란 용어를 보고 반가웠죠~~
예쁘장한 필기노트는 참 욕심나네요. 내용은 몰라도 복사본 하나 소장하고 싶을만큼이요.
저렇게 예쁘고 짜임새 있는 노트를 보면, 이걸 쓴 사람은 앞으로 자기가 뭘 쓰고 그리게될지 미리 알고 있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습을 많이많이 하셨나요? 네오바로크라고 쓰면서 이미 어떤 부연설명이 달릴지 알고 계셨던거죠!
훌륭한 노트정리가 더욱 부러운 이유는. 네, 그렇습니다. 느낌상 오늘, 날짜상 어제인 11월 4일 불합격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_- 하아, 다시금 손목 아프게 서브노트를 만들고 수정하고 외워야겠네요. 낑낑
위에도 썼겠지만 이런 노트는 그 뒤로 없었어요. 전 언젠가부터 필기하는걸 아주 싫어하게되어서 심지어 시험공부할때도 팔짱끼고 눈으로만 읽어요. 좀 급할때나 색연필로 줄치는 정도. 크하허헝. 이번에 미끄러진 시험이 혹시 토목기사시험? 그거라면 노트가 필요없지 않나요? 그냥 답치기, 눈에 바르기, 앞글자 따서 외우기 등등으로 합격하시고 바로 잊으시면 됩니다.-_-; 혹 다른 고시종류였다면 죄송하빈다. 전 그냥 일개 건축기사일따름이라서.
이제 슬슬 컴퓨터와 티비를 0으로 수렴시켜야 하는데 덜컥 겁이 나네요. 언제부터 안오게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블로그 이사가시게되면 메일로 주소좀 보내주세요^^ 어느새 열성팬이 되어서, 태지오빠처럼 급잠적해버리시면 연희동에서 무작정 기다릴...게 아니고 하여튼 부탁드립니다!
(이미 즐겨찾기에 고이 접어 나빌레라) 컴퓨터를 친구한테 맡겨서 물리적 접근 자체를 차단해야 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헤에- "잘다녀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이거 예약합니다. 나중에 정말 못들어오게될 때는 이미 고시마인드 장착한 뒤일테니까 멀쩡한 인사도 못하게 될 것 같아서요^^
뭐 작별인사같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들어오고 싶으니 아직 잘가라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