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07일
핀업베이비 시절
지금은 좀 시들하지만, 난 일종의 미시사 기록자였다. 디지털카메라를 쫌 일찍 갖게된 편이었고, 그래서 평소에도 잘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여기저기를 찍었다. 주로 친구들과 놀고 있는 사진이라거나, 놀면서 만들었던 무엇이거나, 놀면서 어딜 갔던 사진들이거나, 놀면서 했던 개뻘짓들이라거나 등등등. 그래서 찍을 땐 그냥 그랬는데, 이런 사진들의 진가는 몇년이 지난 후에 빛을 발한다. 아, 그랬었었었지. 2000년부터 캐논 G1으로 찍기 시작한 사진들이 지금도 하드디스크에 그대로 들어있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진찍는 빈도도 낮아지기에 요새 사진은 여행이나 다녀와야 쌓이고 있지만, 정말 예전 사진은 소소하니 즐겁다.
졸업앨범에 개인사진을 넣으라고 하는데, 한 친구가 예전 자기 사진이 있냐며 나에게 찾아봐줄 것을 부탁했다. 난 내가 찍히는게 아주아주 어색하기 때문에 내 사진이 별로 없지만 내 주위에서 얼쩡거리다보면 의도치않게 기록되고 만다. 그걸 노린거지. 덕분에 예전사진들을 뒤져보게 되었고, 이런저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나의 찬란했던 역사도 발견하고 말았다.
예전 맞춤법인 '돐'이라는 글자가 시대를 말해 주는데, 아마 1980년 사진일 꺼다. 돌사진이라고 보기엔 애가 좀 컸는데, 그때 사진찍을 돈이 모자랐었는지 조금 후에 찍었었다고 한다. 요새 사진찍으면 어색한 포즈와 표정으로 빳빳이 굳는데 반해서, 이때엔 참 포토제닉하구나. 아닌게 아니라, 난 핀업베이비였다. 아파트 상가 1층에 있는 사진관에서 샘플로 걸어놓는 사진으로 뽑혔었고, 사진관 입구 벽에 걸려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진관이 상가 입구에 있던 터라 <숭례문> <광화문> 현편처럼 내 사진이 현판처럼 걸려 있었다. 아, 아련한 이야기다. 누구는 큰바위 얼굴을 보며 꿈을 키웠다지만, 난 내 사진을 보며 50뭔짜리 핫도그를 사먹었었다.
두번쯤 이사한다음 중학생쯤 되었을 때, 부모님과 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말에 강동구 쪽으로 놀러간중 이 아파트 단지 사진관에 들러봤다. 예전에 걸려 있던 사진들이 아직도 있냐고. 집에 있는 이 사진은 크기가 A4보다 작고, 아마 B5보다 작으려나.. 하지만 저 사진은 여름에 이불로 덮어도 될만큼 컸으니까 혹시 구석에 박혀있으면 가져오려고 했었다. 물론 빛도 바랬을테고 구겨졌을지도... 결정적으로 없었다. 하긴, 십수년을 갖고 있진 않았겠지. 난 핀업베이비였다.

오른쪽이 나. 왼쪽은 동생.
이게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다. 이때까지도 카메라 앞에서 참 자연스러웠나보다. 상큼한 표정이 압권이다. 어릴 때까지만해도 난 방긋방긋 잘 웃었다는데, 요샌 어쩌다가 심술궂은 매의 눈빛을 하고 다니게 되었을까. 어릴 땐 토실토실하니 후덕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말랐고. 소싯적 신동이 아닌 애가 없고 소싯적 예쁜 아기가 아닌 아이가 별로 없지만, 이 사진을 보면 나도 흐뭇하다. 훗날 면접 볼 일있으면 이 사진 오려 붙여야지.
이렇게 전도 유망, 장래 촉망되던 소년 데스땡은 지금,

왜_그는_잉여잉어인간이_되었나.jyp_2pm
# by | 2009/09/07 20:49 | 뻘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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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새 반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걸 이미지로 표현하는게 너무 딱이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었네요~
얼른 잉어상태를 벗어나야겠어요!
처음엔 잉여-잉어 말장난만 생각했는데, 잉여-잉어-인어 까지 되는군요! 호오~~
근데 돐사진 눈썹이 정말 예술이에요! 누가봐도 완전 호남형이다! 싶을 정도로 잘생긴거 있죠 >.<
근데, 두살짜리 애가 '호남'소리 듣는건 다행일까요 아닐까요. -_-; 게다가 지금은 호남형이 아닌건 불행일까요 아닐까요. 끄응.
저 이후로 전 저렇게 맑게 웃어본 일이 없는 것같은데... 난 안될꺼야 아마.
돐 사진은 어떻게라도 수소문해서 입수해서 가보로 물려주세요.
잉어(인어?)인간이 아니라 멋있는 청년이란 후문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요새는 종종 말이 혀끝에서 맴돌아서 답답하지만 예전엔 말을 참 빨리 잘했던거 같아요. 근데 부모님께 따다다다 도전하진 않았어요. 그땐 되게 순딩이였거든요. 지금도 그렇게 따져봤자 부모님에게 통하는 대화법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고 다른 방법을 써보려고 노력중이죠. 똑부러진 발음.. 하하, 그래서 내 말투가 다른 사라들에게 정통 서울말처럼 들리나봐요.
아마 바뀐지 꽤 오래 되었을껄요? '무우'가 '무'로 바뀌었을 그때. 발음과 표기를 일치시킨다고 했던거 같아요. 그 이후엔 다시 '무우'와 '무'가 모두 표준어로 인정되긴 했지만 '돐'은 어디 써먹을 데가 없으니... 설마 '돐아진'이 '돌사진'으로 연음 된건 아닐꺼에요. 근데 글자는 마이너하기도 하고 문어체스럽기도 해서 '돐' 예쁜거 같아요.
이메일 처음 만든 50대 부장님 꺼 같잖아요! 역시 아저씨 취향이야.
빈말이 아니라고 하시니 으쓱으쓱. 똘똘한 어린이는 아니고, 병약한 지식인은 잘 다녀왔습니다.
예쁜어린이선발대회에서 우승먹을 정도 아닌가효? 아 귀여워!!!
상일동? 고덕동? 어쨌든 동향출신이라 반갑고(1) 연대 나오셨다니 K로써 긔 더욱 반갑고야- (2)에다가 어쨌든 건축이나 토목이나 한가족이라고 혼자 아주 가까이 느끼고 있으니(3) 지연 학연? 혈연으로 접근해 마치 사람 전부 간파한듯이 구는 재수없는 영감님 꼴이군요-_-
흐흠~ 둔촌아파트는 꽃님이랑 풀이랑 나무랑 풀벌레랑 모두모두 예뻤는데 재건축을 노리고 망가진 보도블럭도 그대로 방치, 도장공사도 안하고 최대한 오막살이로 보이려 애를 쓰는걸 보고 마음이 상했어요. 거기 살았을때를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하는지라 영영 볕 잘드는 꽃밭인채로 남아있어줬으면 싶거든요. 난방이나 단열 채광 등등 생활의 불편을 알면서도 제 추억을 위해 재산권행사를 막을만큼 고집세고 힘센사람은 못 되기에 혼자 마음아파하는 수 밖에 없네요.
p.s.1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p.s.2 돐사진이라고 쓰던 시절에는 발음이 어떻게 됐나요? [돌사진] [돌싸진]
p.s.3 대단한 미남이신데다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까지 가지셨군요^^ (어린이에게 반하다니;)
전 명일동에도 살다가 고덕동으로 이사갔습죠. 지금은 옛날에 살던 아파트 재건축했다던데 그 근처는 갈일이 없어서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학연과 지연으로 옭아매셨으니 그 포부 계속 유지하셔서 기시합격하시면 형제애를 발휘좀 해주세요. Y와 K, 우리는 하나라고 매년 가을마다 그렇게 외치지 않았습니까. 떡고물이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예약부터 해놓으려고요. 둔촌동은 아직 재건축 안했나봐요. 아으, 그 오래된 주공아파트를 관리 안하면 어떻게 되는지 대충 본 적이 있는데 귀신들이 하숙하는 듯하더라구요. 머, 아파트 공화국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겟지만.
음, 덧1은 되게 어려운 질문이시네용~ 그 동네 살지도 않는 '탐미주의자'들이 달동네가 예쁘다는 둥, 시간이 축적되었다는 둥하는 이유로 주민들의 가난을 즐기라고 강요하는 건 무지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사회의 아파트집착을 이해하고 싶진 않습니다. 수도권에서만 살다가 대전에 내려가보니 정말 그동안 한국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은 백퍼센트 서울의 이미지였더라구요. 지방은 다른 나라에요... 집값도 천지차이고. 그 기득권 지키겠다고 관습헌법운운하거나 효율집중 운운하는 인간들은 상식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욕심에 가득찬 쥐의 쥐쥐자들. -_-; 그래서 뉴타운은 으에.. 토건제일주의 정서가 남아있는 촌스런 애들의 뽕이라고 생각하는데, 짭게 줄이려다보니 뜻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대충 아시겠죠? 현실에 불만많은 투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