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에서 용하다는, 말고기 가이세키요리 by 데스땡

원래, 고품격 음식 여행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냥, 비싸지 않게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으려했었다. 하지만, 난 늦잠을 잤고 그래서 계획보다 세시간이나 늦게 버스를 탔고, 그래서 점심세트가 아닌 정식 저녁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점심엔 스테이크와 말육회가 나오는 2400엔짜리 정식을 먹으려 했었지? 전날밤의 맥주와 나의 게으름이 날 품위있게 이끌었다니까. 가이세키..가이세키... 개세키..개세.. 아, 욕이 아니라 반추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냥 허름한 식당에서 고집있는 부부가 하는 식당이었으면 안되었을까.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길을 따라 가보니 일본풍 노출 콘크리트 질감의 건물이 나타났다. 옥외 특별피난 계단도, 디자인있게 2층으로 바로 연결되게 만들었네. 성큼성큼 걸어올라갔지. 어라 한 일본인도 문앞까지 갔다가 주저하며 돌아나오는 모습을 봤어. 훗, 난 널 이겼어. 문앞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유카타를 차려입은 할머니를 대동한 부유하게 생긴 일본인 가족들이 들어선다. 어라, 난 청바지에 배낭메고 조금은 피곤한 얼굴인데, 나 들어가도 되나 싶어서 고민하는동안 자동문이 열려버렸다. 이럇샤이마세! 기모노를 입은 단아한 일본여성이 공손히 날 이끌었다. 한명이세요? 하이. 대답까지 해버렸어.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그래 이건 아니지.. 싶었다. 가장 싼 佳 정식이 5250엔. 뒤로 가면 7천엔 9천엔대 요리가 나오지. 한글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좀 더 분위기를 살펴봤다. 그 이하는 절대 없어. 절대. 2400엔짜리 메뉴는 없었지. 보니까 말갈기 초밥같이 특수부위를 시키면 한접시에 하나가 나올지 두개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1100엔정도를 내야하는 그런 분위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돈을 내고 말갈기에 혀가 쓸리고 괜히 말털이 이빨에 껴가지고는 일본에서 뭘 하고 온건지 의심까지 받으면 더더 미안하잖아. 그래, 메뉴판이 나에게 그렇게 미안해하더라. 하지만 가장 싼 코스메뉴는 5250엔. 이거 주세요. 그래도 영어를 할 줄아는 종업원은 조금 예뻤다.


가이세키요리라면 먼저 이런게 떠오른다. 회식엔 회색요리. 간을 한듯만듯 씹으면 서걱서걱 씹히면서 원래 재료가 뭔지 궁금해지는 맛. 이게 뭘까 싶으면서도 꼭꼭 씹어먹었다. 말고기가 나중에 들어왔을 때 미리 사료를 위에 깔아놓는것같기도 하고.


이건 식전주. 매실주같은 맛이었다. 왼쪽은 빼놓을 수 없는 맥주.

이건 전채요리. 역시 재료의 맛을 살렸다고는 하지만 난 잘 모르겠는데다가 여기가 한국이면 난 종업원을 옆에 붙여놓고 하나하나 물어보는거 잘 하지만 일본에선 잘 못하겠더라. 분명히 아주 친절하고 웃음띤 얼굴로 과도하게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 뻔하지만, 그럼 뭐해, 이 사람들은 일본어가 너무 유창해서 일본어로만 설명해준다. 어딜가나 마찬가지. 터미널, 식당, 길에서 길묻기, 어디를 가도!!!


바사시 aka 알고기 육회가 나왔다. 때깔이 참 곱다. 여러부위의 고기를 씹을 수 있다. 꼭꼭 씹었다. 어느 부위인지는 당연히 모르겠다.  가운데에 하-얀 부위가 난 제일 맛있었는데 비계라고 하기엔 너무 쫀득했다. 다른 부위도 맛은 있었는데, 감질난다.

식전주 옆에 잠깐 등장했던 맥주. 산토리 흑맥주. 기네스나 스타우트처럼 새카맣지는 않은, 뒤가 비치는 갈색이고 흑맥주 특유의 씁쓸한 맛은 덜하지만 말고기엔 너무 잘 어울렸다.

이건 말고기 국. 차례상에 오르는 쇠고기무국이랑 비슷하다.

혼자 갔기에 카운터석에 앉았다. 안쪽엔 고급스러운 방들이 늘어 있고, 난 주방에서 고기써는 걸 보면서 먹을 수 있었다. 정육점 앞에서 먹는 분위기 절대 아니라는 소식.

간장소스에 익힌 말고기와 부재료들. 내가 잘하는게, 비싼 요리를 싼 음식과 대응시키기. 약간 진한 소스의 규동? 요시노야에서 규동은 380엔. 이 요리는? 5250엔의 일부분.

디스이즈 메인디쉬. 라는 말과 함께 나온 말고기 스테이크. 바베큐와 스테이크중에 선택할 수 있다. 좀 더 비싼 코스에서는 전골이나 샤브샤브중에 선택할 수 있다. 얼마나 익힐 건지 안물어봤는데, 이런 미디움웰던으로 익혀나왔다. 조금 덜 익혔으면 좋았을텐데. 앞에선 고기조각들이 자그마해서 육질을 본격적으로 느끼기에 부족했다.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커서 만족했다. 남자 손바닥만큼은 나오니까.

꼬들꼬들한 밥과 약간의 절인 반찬, 그리고 붉은 미소시루. 몇백엔을 추가하면 초밥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미소국이 아주 맛있었다.

이건 밥과 함께 나온 따뜻한 녹차.

디저트로 나온 케이크와 과일.




맥주까지 합해서 6000엔정도가 나왔다. 환율이 유로처럼 자릿수가 아주 달라버리면 3유로? 이건 5000원정도? 하면서 일일이 계산을 해보지만 일본에선 왠지 모든게 싸보인다. 100엔이 동전이라 한국과 지폐-동전 느낌이 비슷해서 그런지도.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계산해보니 밥 힌까에 8만원을 쓰고 나온셈이잖아. 아, 나 한국에서도 그리 비싼 밥 사먹어 본적이 없었는데. 아마 제주도에서 파는 말고기 식당에서도 이것보단 쌌던 거 같아. 고급스런 식당을 다니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지만, 난 아주 섬세한 미각은 없는 것 같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정도는 구분하고, 좋은 고기와 안좋은 고기는 먹어보면 대충 알겠지만, 말고기는 이게 그렇게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아주 비싼 소고기를 구워먹었으면 더 행복할 뻔도 했다.

아, 물론 이렇게 한번 먹어보니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거 먹기 바로 두시간전에 라멘을 한그릇 먹었기에 덜 배고파서 아주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을 수도. 가격에 대한 원망다는 새로운 요리를 먹어봤다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둘쨋날 저녁이었다.


음식점 이름 : 스가노야(管乃屋) @구마모토
다른 바사시요리집은 점심에 잘 안여는데 이곳은 11:30~14:30 점심 영업을 한다. 점심 메뉴로, 스테이크 1575엔, 스테이크+육회 2400엔, 가이세키 4800엔. 저녁 코스는 5250엔부터 9450엔. 단품요리도 많다. 가이드북엔 '구마모토 시내전차 토오리쵸스지역에서 구마모토성을 바라보도 오른쪽 첫번째골목'이라고 나와있다. 구마모토 버스센터-구마모토성과도 가까운데다가 시내번화가 바로 앞이라 접근성은 좋다. 전화번호는 096)355-3558

덧글

  • 카이º 2009/09/16 14:05 # 답글

    오오, 확실히 가격대가 좀(...)

    하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네요!!
  • 데스땡 2009/09/16 16:23 #

    사진을 찍어놓으니 비싼 음식같아서 뒤늦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 2009/09/16 15: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9/16 16:28 #

    비문도 B급 생활의 일종이에요. 네, 무족권 제송합니다. -_-; 포스팅이 너무 길어서 지쳤나봐요. 문장을 쓰다말고 딴 생각을 하면 비문이 나오는데, 요새들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서 논술학원을 다녀야 하나 고민중이죠.

    하하, 지불한 금액만큼 가치 있다는 실험도 있는데 이런 실험도 있었어요. 10원짜리 수천개를 세어놔라. 같이 잉여스러운 미션을 주고 각팀에 보수를 달리 줬는데 오히려 돈을 적게 받은 쪽에서 만족도나 성취감이 높았대요. 내 행동엔 돈 이외의 숭고함이 있어! 하고 말이죠. 아, 써놓고 보니 제가 비싼 밥 쳐먹은거랑 아무 상관없군요. 네, 사실 음식의 질과는 상관없이 돈이 아까웠어요!! 그러니까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님하는 무려 지산티켓을 선물받은 여자잖아요.
  • 아이리스 2009/09/16 16:59 # 답글

    아 맛있어 보입니다.

    하얀 부분은 아마 목 쪽이었던 거 같아요~
  • 데스땡 2009/09/16 21:22 #

    아하, 드셔보셨나봐요. 식감이 되게 쫀득하고 맛있었어요.
  • 은사자 2009/09/16 21:51 #

    아..저게 목이였군요!! 역시..목은 진리!!! 닭도 목이 맛있다니까요, 글쎄~ ㅎㅎㅎ
    아..나 지난번 푸아그라부터 시작해서.. 뭔가 야만적인 이미지가..;;; ㅠㅠ
  • 데스땡 2009/09/16 23:14 #

    은사자님// 은사자는 역시 맹수류. 목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어. 야만 말고 야생이죠 야생~~
  • 아이리스 2009/09/17 10:18 #

    포스팅 해주신 곳에서 먹은 건 아니고요,

    다른 바사시 하는데서 먹어본 적이 있습죠.

    근데 목이 맞는지 확인은 잘...T_T (먹을 때 그렇게 얘기해주신 것 같은 기억이 나서...)
  • 데스땡 2009/09/17 21:21 #

    어차피 저도 모르니까 '목'을 먹었다고 합의보면 되죠~
    아무도 모를꺼에요. 하얀 목살 고이접어 나빌레라.
  • 2009/09/16 17: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9/16 21:30 #

    그쵸~ 제대로된 가이세키를 먹고 싶지만 그건 정말 후덜덜 비싸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가격에 대접받았다고 생각하려구요. 일본은 밥먹는데 아주 편하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특히 이곳은 더 그랬어요. 그나저나 료칸에 가이세키요리까지 괜찮은 곳으로 골랐으면 정말 쌈짓돈 분리수거는 제대로 하셨겠어요. 지못미 지못미. 근데 쿠로가와쪽이라고 했었죠~ 거기도 말고기가 나오는군요. 담엔 그리로 가야지. 아소산도 보고.

    저도 여행기가 막 쌓여있으니까 다른 뻘글들이 잘 안나오는 것같아서.. -_-; 얼른 끝내버리고 싶어요~ 어차피 포스팅거리가 없으면 없는대로 뻘소리가 생기고, 많으면 많아서 시간 잡아먹고. 여인네들 밥과 디저트배 따로 있듯이 저도 공부시간과 여가시간은 따로 있는듯. 아, 공부시간은 별로 없는듯. -_-;

  • 2009/09/16 21: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데스땡 2009/09/16 23:17 #

    천엔만 넘어가도 잘 담겨 나오는 거 같아요. 존내 선진국? 큿큿. 저런 정식이라도 먹을라치면 헝클어뜨릴까봐 먹지도 못할정도.

    초식남이라뇨, 전 야설에 준하는 포스팅도 하는데다가 아래 포스팅 덧글에서 ㅂㅅㅁ님은 제게 박력도 있다고 아줌마같은 웃음도 웃었어요.
  • 택씨 2009/09/17 14:22 # 답글

    말고기가 소고기와는 식감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나봐요.
    말고기 육회는 처음 봤어요.
  • 데스땡 2009/09/17 21:22 #

    식감이 다르긴 많이 달랐어요. 훨씬 더 치아에 저항하는 느낌이었어요. 쫀득하다고 해야하나.. 소고기는 육회라도 적당히 포슬포슬 부서지잖아요. 말고기는 더 조직이 치밀해요. 근데 익혀놓으니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제주도에 직접 말을 잡는 요리집이 있다고 들었어요.
  • 하루 2009/09/25 11:55 # 삭제 답글

    헐.... 점심먹고와서 봐야겠슴둥. -_-;;
  • 데스땡 2009/09/25 18:52 #

    절판 임박하신 하루님, 요새 바쁘셨나봐요~ 덧글도 한꺼번에 몰아서 달아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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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